[판결] "입주자대표회의 인감 인도 거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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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후임 회장에게 인감 인도를 거부했더라도, 이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9월 4일 업무방해 혐의로 기소된 A 씨 상고심(2024도7386)에서 A 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사실 관계]
A 씨는 경기 남양주시 한 아파트의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었다. 2021년 4월 1일 후임 회장 B 씨 임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A 씨는 입주자대표회의 은행거래용 인감도장 인도를 거부하고, 사업자등록증 원본 반환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쟁점]
A 씨의 행위를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로 볼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형법 제314조는 '제313조의 방법(허위사실 유포나 기타 위계로써 신용을 훼손하는 행위) 또는 위력으로써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하급심 판단]
1심과 항소심은 A 씨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를 했다며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하급심 재판부는 "A 씨에겐 인감 등을 반환할 의무가 있는데도 이를 거부해 B 씨가 회장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할 수 없게 했다"며 "A 씨에게 업무를 방해할 의사가 있었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대법원 판단]
대법원은 A 씨의 행위가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먼저 "부작위나 소극적 행위가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그 행위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할 만한 정도에 이르러 업무방해죄의 실행 행위로서 피해자 업무에 대하여 하는 적극적인 방해 행위와 동등한 형법적 가치를 가져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를 바탕으로 "A 씨가 B 씨에게 인감 등을 인도하지 않은 행위가 위력으로써 업무를 적극적으로 방해한 것으로 판단하긴 어렵다"며 "A 씨 행위로 인해 B 씨가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게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됐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했다.
그러면서 "A 씨는 단순히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인감의 인도를 거절했을 뿐, 인감을 사용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 행세를 하는 식으로 B 씨 업무를 적극적으로 방해한 사정은 보이지 않는다"며 "사업자등록증 원본은 A 씨가 회장 선거 직후 아파트 관리소장으로부터 교부받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A 씨가 관리소장이나 B 씨에게 물리력이나 강제력을 행사한 건 아니다"고 했다.
이어 "B 씨는 인감 없이도 2021년 4월에 입주자대표회의 개최, 의결 사항 처리, 사업자등록 대표자 변경 신고, 예금 청구, 세금 납부 등의 업무를 정상적으로 수행했다"며 "A 씨에게서 인감을 받아야만 B 씨가 회장 업무를 할 수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판시했다.
출처 법률신문 이상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