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법률 [판결] 대법, '가습기살균제 사건' SK케미칼·애경 前 대표 등 유죄 판결 파기…"공동정범 성립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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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든 가습기살균제를 제조·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 대표에게 실형을 선고한 항소심 판단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26일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SK케미칼·애경산업·신세계이마트 전직 임직원 등 13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홍지호 전 SK케미칼 대표(변호인 손일원 변호사, 법무법인 광장 성창호·김영진·백정화·홍정훈·김서경·전형미·김성윤 변호사, 법무법인 태평양 권오석·고지훈·이상현·윤여형·한예인·최주리·김태연·최유진 변호사, 홍승면·홍화연 변호사)와 안용찬 전 애경산업 대표(변호인 법무법인 대륙아주 이규철·정성태·현용선·최병철·김석진·이수인 변호사)에게 각각 금고 4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2024도1856).
홍 전 대표 등은 2002년~2011년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등 독성 화학물질 성분으로 가습기살균제인 '가습기메이트' 등을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객관적·과학적 방법으로 안전성을 검증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냈다며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2021년 1월 이들의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로 판단했다.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성분 가습기살균제가 폐질환이나 천식을 유발한다는 구체적 인과관계가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1심은 "CMIT·MIT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천식 발생 혹은 악화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홍 전 대표 등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피해자들의 상해 및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됨을 전제로 하는 공소사실과 나머지 쟁점들 역시 더 나아가 살펴볼 필요 없이 모두 범죄증명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항소심은 홍 전 대표 등에 대한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항소심은 유죄가 확정된 옥시, 롯데마트 등 사건 관계자들과 피고인들의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공동정범 관계가 성립한다고 봤다. 이 때문에 옥시 등 사건 관계자들이 기소돼 유죄 판결이 확정된 때까지 홍 전 대표 등에 대한 공소시효가 중단된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산업사회에서는 경쟁 관계에 있는 복수의 제조업자가 동일한 유형의 제품을 제조·판매하고 소비자가 시중에 유통되는 여러 종류의 제품들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히 예정돼 있으므로 각 가습기살균제 제품의 개발·제조·판매에 관여한 사람들 모두가 공동의 주의 의무와 인식 아래 업무상 과실로 결함 있는 가습기살균제를 각각 제조·판매했다고 할 것"이라며 "그 결함으로 그중 두 종류 이상의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한 피해자들에게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했다면, 이들 중 특정 피해자가 중복 사용한 가습기살균제들의 제조·판매에 관해 업무상 과실이 있는 사람들 간에는 해당 피해자에 대한 업무상과실치사상죄의 공동정범이 성립한다고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재판부는 홍 전 대표 등과 옥시, 롯데마트 관계자들 사이의 의사 연락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고 피해자들의 상해 및 사망의 결과에 관한 공동 인식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옥시, 롯데마트 등 관계자들과 홍 전 대표 등이 상대방 가습기살균제의 개발·출시를 인식했다거나 그에 관해 서로 의사를 연락했다는 점을 인정할 만한 사정도 발견할 수 없다"며 "어떠한 제품이 개발·출시된 후 경쟁업체가 '기존 제품과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른 대체 상품'을 독자적으로 개발·출시한 경우에는 사망 또는 상해의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정을 공동으로 인식할 수 있었다고 볼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옥시, 롯데마트 등 사건의 피고인들이 제조·판매에 관여한 가습기살균제와 홍 전 대표 등이 제조·판매에 관여했던 가습기살균제는 그 용도나 용법이 동일할 뿐 주원료 등 주요 요소가 전혀 다르다"며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개량한 제품이라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인정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인정하는 형사정책적 목적이나 취지, 소비자들이 주원료의 차이를 알고 구매하는 것이 어려웠다는 점 등은 옥시 등 관계자들과 홍 전 대표 등의 인식 내지 의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그러한 사정만으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한다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특징으로 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망 등을 통해 국경을 초월한 상품의 구매·소비가 용이하게 이뤄지는 현대사회에서 상품 제조·판매자들 등에 대한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 범위가 무한정 확장된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데도 원심은 홍 전 대표 등과 옥시, 롯데마트 등 사건 피고인들 사이의 공동정범 성립을 인정했고 이를 전제로 공소시효 완성에 관한 홍 전 대표 등의 주장을 배척했다"며 "홍 전 대표 등의 업무상 주의의무위반과 피해자들의 사망 또는 상해 결과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에 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상고심 변호인으로 참여한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인단은 "원심에서 과실범의 공동정범 법리를 위반해 공동정범의 범위를 무한정 확장될 수 있는 정도로 확대했다"며 "그와 같은 법리오해를 전제로 공소시효 완성 여부와 인과관계 존부에 관한 판단을 한 것에 대해 대법원은 원심이 과실범의 공동정범 성립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제대로 된 심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심을 파기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의 변호인으로 참여한 한 변호사는 "옥시에서 제조·판매한 가습기 살균제의 주원료는 PHMG 등이고, 이 사건 제품의 주원료는 CMIT·MIT으로 성분 등이 전혀 다른데도 항소심에선 과실범의 공동정범이 인정됐다"며 "대법원에서는 그 부분이 기본적으로 인정되기 어렵다고 본 것이고,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이나 인과관계 등 다른 쟁점에 대해선 판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 부분이 무한정으로 확대된다면 형사사법 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며 "파기환송심에서는 과실범의 공동정범에 대한 부분을 비롯해 인과관계 등에 대한 부분까지 다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른 변호사는 "이번 사건은 성분히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공동으로 과실을 공유하기 어려운데, 이에 대해 (과실범의 공동정범을) 모두 인정해버리면 향후 결과 발생에 있어 과실범의 공동정범에 대한 책임 범위가 확대될 수 있다"며 "그 부분이 타당하지 않다고 주장했고, 대법원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법률신문 한수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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