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 미등록 특허권 사용료, 국내원천소득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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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이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특허권이라도 그 기술이 실제 국내에서 사용됐다면 지급한 사용료는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특허권 속지주의를 근거로 국내 미등록 특허권 사용료에는 과세할 수 없다고 보던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9월 18일 SK하이닉스가 이천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법인세 경정거부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돌려보냈다(2021두59908).
[사실관계]
SK하이닉스는 2011년 미국 현지에서 특허관리 전문회사인 A 사로부터 특허침해 소송을 당했다. 두 회사는 2013년에 소송을 화해로 종결하고 미국에 등록된 특허 40건에 대해 연간 160만 달러의 사용료를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SK하이닉스는 2014년 1월 A 사에 사용료 160만 달러를 지급하고 법인세 3억1000여만 원을 원천징수해 국내 세무서에 납부했다. 그러나 SK하이닉스는 2015년 6월 한미조세협정에 따라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특허권에 대한 사용료는 국내원천소득이 아니다"라며 환급을 신청했고 세무서가 이를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 판단]
1, 2심은 "한·미 조세협약상 '사용'의 의미는 국내법에 따라 해석해야 하고, 특허권 속지주의 원칙상 국내 미등록 특허권은 국내에서 사용될 수 없다"며 "따라서 이 사건 사용료는 국내원천소득이라고 볼 수 없어, 과세관청의 경정거부처분은 위법하다"며 SK하이닉스 측의 손을 들어줬다.
[쟁점]
국내 미등록 특허권 사용료가 국내원천소득인지 여부
[전원합의체 판단]
전합은 기존 판례를 변경하고 국내 원천 소득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전합은 "한미조세협약에서의 '특허의 사용'은 특허권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허기술을 사용한다는 의미이고, 종전 판례가 근거로 들었던 이른바 특허권 속지주의는 한미조세협약에서 말하는 특허의 사용지와 관련해서는 고려해야 할 원칙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한미조세협약은 협약에서 정의되지 않은 용어는 달리 문맥에 따르지 아니하는 한 조세가 결정되는 체약국, 즉 국내법에 따른 의미를 가지도록 정하고 있는데,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국내 사용 자체를 상정할 수 없다고 볼 만한 문맥이나 근거를 협약에서 찾을 수는 없다"며 "따라서 '특허의 사용'이라는 용어는 특허기술을 제조 등에 사실상 사용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한미조세협약의 문맥에 의하더라도 국내 미등록 특허권은 국내에서 사용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며 "특허처럼 등록을 필요로 하는 자산 외에도 저작권이나 지식, 기능과 같이 등록을 요하지 않는 무형자산이 함께 규정돼 있고, 이들 무형자산에 통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사용'의 의미는 권리 자체의 사용이 아니라 기술이나 정보 등의 사용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특허권 속지주의는 특허기술의 국내 사용이 국외 특허권자에 대한 침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 그로부터 특허기술을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다는 논리로 나아갈 수는 없고, 국외 특허권자와의 라이선스 계약 체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전합은 결론적으로 "원심은 단지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대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특허기술이 국내에서 제조·판매 등에 사실상 사용되었는지를 살피지 않고 곧바로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므로, 한미 조세협약상 국내 미등록 특허권 사용료의 국내원천소득 해당 여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반대 의견]
다만 노태악·이흥구·이숙연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 대법관은 "한미조세협약에서 말하는 '특허'는 등록으로 효력이 발생하는 특허권 자체를 뜻하고, 속지주의상 특허 사용은 등록국가 내에서만 가능하다"며 종전 판례의 타당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봤다.
또 "국내 미등록 특허 사용료 사건 대부분은 미국 내 특허분쟁 해결을 위한 계약이므로 사용료는 미국 특허 실시 대가이지 국내 사용 대가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 설명]
대법원 관계자는 "그동안 법원은 한미조세협약의 '특허 사용'을 등록국가 내에서의 실시만을 의미한다고 보아 국내 미등록 특허권의 사용 자체를 상정하지 않았지만, 이번 전원합의체는 이를 변경했다"며 "협약상 '특허의 사용'은 국내법에 따라 특허기술을 제조·판매 등에 사실상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고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즉 특허권의 등록지와 무관하게 국내에서 해당 기술이 사용됐다면 사용료는 국내원천소득으로서 과세권이 미친다고 본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한미조세협약 해석과 관련한 용어의 의미와 조세조약 해석방법을 명확히 하고, 종전 판례와 달리 국내 미등록 특허권 사용료에도 국내 과세권이 있음을 밝힌 데 큰 의의가 있다"고 덧붙였다.
[대리인 의견]
파기환송을 이끈 이승준(사법연수원 42기) 법무법인 가온 변호사는 "세법의 기본은 과세의 형평성"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형식보다 실질을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유독 미등록 특허 사용료 사건에서는 등록이라는 형식 앞에 사용이라는 실질이 외면돼 왔다"며 "이번 판결은 사용료 소득이 특허법의 효력에 따른 것이 아니라, 유효한 라이선스 계약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해당 특허기술이 실제로 사용 또는 제조돼 경제적 가치가 창출된 결과임을 확인한 판결"이라고 말했다.
법률신문 안재명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