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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파산한 가상화폐거래소, 회원 예치금 돌려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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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7회 작성일 24-11-2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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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거래소가 파산해 예치금을 받지 못하게 된 회원들에게 횡령 등을 저지른 거래소 대표와 사내이사가 돈을 돌려줘야 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가상화폐가 주식이나 부동산 같은 자산처럼 활발히 거래가 이뤄지는 가운데, 무리하게 거래소를 운영하다가 파산한 경우 대표이사 등에게 예치금을 물어줄 의무가 있다고 인정한 판단이어서 주목된다. 관련 형사 재판에서는 피해자들의 배상 명령 신청에 대해 "배상책임의 범위가 명백하지 않다"는 이유로 각하됐지만 민사재판에서는 손해액 인정과 관련해 구체적인 심리를 통해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재판부는 파산 사건의 채권자 목록에 있지 않은 원고들에게도 업체의 사내이사들이 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4부(재판장 이원중 부장판사)는 지난달 31일 A 씨 등 26명(소송대리인 법무법인 정향 변호사 강호석, 이현정)이 업체 대표와 사내이사 등을 지냈던 B, C, D, E 씨를 상대로 낸 예치금 반환 등 청구의 소(2019가합39911)에서 "A 씨 등에게 각각 500만 원~2억여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특이한 운영 방식을 가졌던 트래빗… 2021년 파산

(주)트래빗은 2017년 12월 전자상거래업, 전자화폐중개 및 코인거래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돼 2018년 7월경부터 '트래빗(Trebit)'이란 상호로 가상화폐 매매와 중개를 하는 가상화폐거래소를 운영했다. 트래빗은 2019년 4월 30일 (주)노노스에 흡수합병됐다. 그러나 노노스는 2019년 6월 28일 파산 신청을 했고, 2021년 11월 8일 서울회생법원에서 파산이 선고됐다.

 

피고 B 씨는 트래빗에서 사내이사와 대표이사로, 노노스의 사내이사와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C 씨는 트래빗에서 감사로 재직하며 전무이사 직함으로 거래소 업무 전반을 총괄했으며 노노스에서 사내이사로 재직했다. D 씨는 트래빗과 노노스의 사내이사로, E 씨는 트래빗에서 이사 직함으로 근무했다.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는 거래원장(가상화폐의 전송내역을 저장한 전자정보)을 중앙서버에 저장하고 검증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원장을 여러 컴퓨터에 분산해 저장시키고 검증하도록 한 후 그 대가로 컴퓨팅 파워를 제공하는 컴퓨터에 가상화폐를 지급하는 방식(이른바 '가상화폐 채굴')으로 작동된다. 그러나 트래빗은 거래원장이 분산 저장, 검증되는 블록체인 기반의 가상화폐와 달리, 중앙서버를 두고 거래소 이용자들의 현금 입출금, 가상화폐 입출금·거래를 단독으로 저장하고 검증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즉 트래빗 운영자들은 제3의 기관의 감시를 받지 않는 상태에서 거래소의 특정한 계정에 현금 또는 가상화폐가 입금된 사실이 없음에도 서버의 데이터베이스(DB)에 현금 또는 가상화폐가 입금된 것처럼 임의로 수정해 DB의 위조가 쉽게 가능했다. 트래빗의 회원들은 거래소가 제공하는 거래시스템에 게시되는 정보를 그대로 믿고 가상화폐 매매 주문, 계약 체결, 출금 등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트래빗 폐쇄 경위는…
트래빗 운영 초기에는 회원들의 '가상화폐-가상화폐 간 거래'만 가능했지만 2018년 8월경부터 회원의 예치금을 보관하는 계좌(집금계좌)가 개설돼 '원화-가상화폐 간 거래'도 가능해졌다.

 
2018년 9월경 트래빗 거래소에서 사용하던 트래빗 명의의 집금계좌가 보이스피싱에 이용됐다는 신고가 접수됐고 B, C 씨는 이날부터 2018년 10월 21일경까지 거래소를 이용하는 고객들의 원화 입출금을 중단했다. B, C 씨는 같은 달 29일 노노스 명의의 집금계좌를 이용해 고객의 출금을 재개했는데 하루 만인 30일 해당 계좌의 잔고가 400만 원밖에 남지 않았다. B 씨는 11월 21일경 원화 잔고 부족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조치를 했지만, 원화 부족 상황이 계속됐다. 보이스 피싱 이용 신고가 2차례 더 발생했고 B, C 씨는 2019년 1월 4일부터 다시 출금을 금지하다가 같은 해 5월 15일 원화 출금을 허용하지 않은 채 거래소 운영을 중단한 뒤 다음 달 노노스의 파산을 신청했다.

 
B, C 씨는 2022년 10월 거래소의 DB를 조작해 거래소 시스템에 표시되도록 하고, 거래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는데도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회원들을 속여 현금과 가상화폐를 가로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배임, 사기) 등 혐의로 기소돼 2024년 10월 각 징역 4년 6개월과 3년 6개월의 형이 서울고법에서 확정됐다. 당시 형사 재판부는 "배상책임의 범위가 명백하지 않다"며 이 사건의 원고인 피해자들이 배상명령을 신청한 부분을 각하했다. 배상명령이란 법원이 형사사건 또는 가정보호사건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할 경우, 피해자의 신청이 있으면 가해자에게 직접적인 물적 피해, 치료비, 위자료의 배상을 명령하는 제도다.

 

법원, "예치금 배상하라"
재판부는 트래빗의 대표이사로서 피해자들에게 예치금 상당의 손해를 입힌 B 씨에게 예치금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했다. 또 C 씨와 D 씨에 대해서도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특히 트래빗의 감사이자 '전무이사'로 칭해지며 트래빗을 사실상 지배하면서 거래소 관련 업무 전반을 총괄했던 C 씨에 대해선 더 큰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금융위원회가 2018년 1월경 제정한 '가상통화 관련 자금세탁방지 가이드라인',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가 정부의 권고에 따라 제정한 '암호화폐취급업자의 금전 및 암호화폐 보관 및 관리 규정' 등에 따르면, 가상화폐 거래소 운영자는 늦어도 2018년 1월 30일부터는 고객들의 예치금과 거래소의 운영비 등을 분리하여 보관, 관리해야 하고, 예치금의 100% 이상에 해당하는 돈을 준비금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트래빗은 예치금을 보관하는 집금계좌에서 운영비계좌로 돈을 이체하거나, B, C 씨 또는 그 가족 명의의 계좌로 이체하는 일이 다수 발생했고 이로 인해 예치금의 100% 이상이 집금계좌에 보관되어 있지 않아 회원들의 출금요청에 대응하지 못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했는데, C 씨는 2019년 3월경 집금계좌의 거래정지를 핑계로 회원들의 출금을 막기 위해 트래빗의 아르바이트생에게 집금계좌에 대한 허위의 보이스피싱 신고를 하게 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트래빗은 처음부터 충분한 기술적 수준을 갖추지 못한 채 개장했고 기본적 운영자금이 부족하여 집금계좌에 입금된 돈을 운영비로 사용하는 등 고객들의 출금을 보장할 수 없는 형태로 운영됐으며, 출금할 원화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임의적 전산조작을 하거나 허위의 보이스피싱 신고를 하는 등 거래소가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회원들을 속여 이들의 현금과 가상화폐를 편취한 불법행위가 인정되어 유죄 판결을 선고받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C, D 씨가 노노스의 파산 사건의 채권자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원고들의 경우 손해배상 청구가 이유 없다고 주장했지만 "해당 원고들이 거래소 폐쇄 당시 예치금을 보유하고 있었기에 노노스의 파산절차에서 이들의 예치금 채권이 파산채권으로 인정되었는지 여부는 C, D 씨에 대한 청구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D 씨에 대해선 법률상 이사이기는 하였으나, 회사 내부적으로는 이사에 준하는 권한이 부여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여 감시·감독 권한 행사에 실질적으로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해 그의 책임을 40%로 제한했다.


E 씨에 대해서도 업무집행관여자로서 고의 내지 중과실 책임이 있거나 불법행위를 방조하였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는 이유로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승소를 이끈 강호석(41·사법연수원 40기) 정향 변호사는 "형사법원에서 피해액 산정이 곤란하다고 배상명령신청을 각하했는데 민사소송을 통해 정확한 피해액 입증에 성공해 원고 전원 승소했다"며 "5년 만에 승소판결을 받게 되어 늦었지만 가상화폐거래소 고의 파산에 대한 운영자들의 민사책임을 명확히 판단한 리딩케이스"라고 말했다.

출처: 법률신문 박수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