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전담 센터

 

KB저널

LAW FIRM KB

법무법인 KB KB저널

“환자가 사망했다고 의료과실 추정 곤란”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댓글 0건 조회 108회 작성일 24-11-21 15:52

본문

요약
▶ 대법원은 급성 감염증 진단 실패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받은 내과 의사 A씨의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당시 의료 수준과 상황을 고려해 과실 여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며 사건을 환송했다.

▶ 이는 사망 결과만으로 의사의 과실을 단정할 수 없다는 취지로 최근 대법원은 민사소송에서도 의료진 과실 인정 기준을 엄격히 적용해 원심을 파기한 사례가 있다.

▶ 법조에서는 의료 관련 민·형사 사건에서 의사의 과실 책임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경향이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이 9개월째 병원과 학교를 이탈해 의료 공백이 생긴 가운데 대법원이 의사의 업무상 과실 책임을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로 잇따라 파기 환송 판결을 내려 관심을 끌고 있다.


대법원 형사1부(주심 신숙희 대법관)는 지난달 25일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로 기소된 내과 의사 A 씨에게 실형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환송했다(2023도13950).


A 씨는 2016년 10월 고열·복통 등의 증상을 호소하는 B 씨를 진찰했다. B 씨는 혈액검사 결과 백혈구 수치와 염증 수치가 정상 범위를 크게 초과해 급성 감염증이 의심되는 상황이었으나, A씨는 장염 증상에 대한 약만 처방만 하고 귀가 시켰다. 이후 B씨는 급격히 상태가 악화되어 다음 날 패혈성 쇼크로 사망했다.


하급심 법원은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를 인정해 금고 A 씨에게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1심은 “A 씨가 일반적인 장염으로 오진하고 급성 감염증을 확인할 검사를 소홀히 했다”며 “급성 감염증을 치료하거나 진행을 완화시킬 수 있는 항생제 투여 등이 제 때 이루어 지지 않아 B 씨가 사망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심도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된 점은 임상적으로 드문 일이 아니고 이러한 상황에서도 A 씨가 증상 악화 가능성을 예견했어야 했다”며 “내과 의사로서 급성 감염증 의심 환자에 대해 필요한 치료를 미루거나 추가 검사 및 항생제 투여를 하지 않은 것은 업무상 과실로 인정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불복한 A 씨는 “B 씨의 맥박·체온 등 신체 지수가 정상 범위였기에 급성 감염증을 단정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대법원도 원심을 뒤집고 A 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과 관련 학회의 감정 결과를 토대로 볼 때 당시 상황에서 급성 장염으로 진단한 것이 임상적 판단의 범위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며 “A 씨가 당시 B 씨의 활력징후가 안정적이었고, 급성 감염증을 진단할 추가 소견이 나타나지 않아 입원과 같은 응급조치를 할 필요성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의사가 환자에게 요구되는 최선의 주의 의무를 다했는지 여부는 당시 의료 수준과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원심이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A 씨의 업무상 과실을 단정했다”며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환자의 사망 결과만 가지고 무조건 의사의 업무상 과실을 추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의료소송 전문가인 이인재(51·사법연수원 31기) 법무법인 우성 변호사는 “하급심에서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더라도 대법원에서는 좀 더 엄격하게 판단하는 것 같다”며 “특히 금고 이상의 실형이 확정되면 의사 면허가 취소되기 때문에 사실관계가 애매한 사안에서는 합리적 의심이 없을 정도의 엄격한 증명이 있어야만 유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근 대법원은 의료 사고 관련 민사소송에서도 의사의 과실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원심을 파기 환송한 바 있다.


9월 27일 대법원 민사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환자가 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24다204665)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척추 수술을 받은 환자에게서 급성 감염증이 발생해 수술 집도의에게 감염관리에 대한 진료상 과실을 인정한 원심을 대법원에서 뒤집은 것이다.


의료진 과실과 감염증 발생 사이의 개연성이 확인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설령 감염의 원인이 수술 부위의 직접 감염이라고 하더라도 의료진에게 감염예방 의무를 위반한 과실이 있다고 곧바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취지다.


지방 소재 법원의 한 판사는 “입증책임이 전환되면서 의사에 입증책임이 전가됐다가 최근 이와 반대되는 취지의 파기환송이 잇따랐다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라며 “다만 개별 사건에서 각 사정을 고려한 판결인 만큼 기조가 바뀌었다고 보기는 아직 무리일 수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각 사건마다 사안별로 소부에서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큰 틀에서 바뀌었다고 볼 수는 없다”며 “다만 큰 틀 안에서 조금씩 바꿔나가자는 시도가 있다고 볼 수 있어 앞으로 어떤 판단이 나올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출처 법률신문 이순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