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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은신처·대포폰 마련 부탁해도 대법원“범인도피 교사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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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80회 작성일 24-05-22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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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밀수 혐의로 수사받다 도피
대법 “방어권남용으로 볼 수 없어”


 

마약 밀수 혐의로 수사를 받던 도중 지인이 마련해 준 은신처와 차명 휴대폰을 통해 도피생활을 해 범인도피교사 혐의를 받은 피고인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1심과 항소심은 피고인의 행위가 통상적 도피 행위의 범위를 벗어나 적절한 방어권 행사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으나 대법원은 통상적 도피 행위에 해당해 적절한 방어권 행사로 봐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향정), 범인도피교사 혐의로 기소된 A 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지난달 25일 사건을 무죄 취지로 원심인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2024도3252).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향정 부분은 법리 오해가 없으나 범인도피교사에 관해선 법리 오해가 있다”며 “원심이 마약(향정)과 범인도피교사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하나의 형을 선고했으므로 결국 원심판결은 전부 파기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2021년 10월 검찰은 A 씨가 공범들과 두 차례에 걸쳐 태국에서 메트암페타민(필로폰) 1.5kg을 밀수입했다는 범죄사실로 A 씨의 주거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이튿날 A 씨는 지인 B 씨에게 전화를 걸어 “법적으로 어지러운 일이 생겼다. 어디 머물 곳이 있느냐. 휴대전화 1대만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A 씨와 B 씨는 해당 마약 밀수 사건 공범의 소개로 2010년 알게 돼 10년 이상 친분을 유지해온 사이였다.


B 씨는 A 씨의 부탁에 따라 2021년 10월 중순부터 11월 말까지 자신의 주거지에 A 씨를 숨겨주고 차명 휴대전화를 마련해줬다. 또 주거지로 찾아온 검찰수사관들에게 “A 씨의 전화번호를 모르며 (A 씨에게) 연락하려면 다른 지인에게 부탁해야 한다”고 거짓말해 A 씨를 도피시켰다.


소송에선 B 씨에게 도피를 도와달라고 부탁해 수사망을 피해 다닌 A 씨의 행위가 방어권 남용에 해당하는지가 쟁점이었다. 범죄 혐의를 받는 피의자 또는 피고인은 스스로 죄를 인정할 필요가 없다는 ‘자기부죄금지(自己負罪禁止) 원칙’에 따라 도망가거나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더라도 처벌받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으로 하여금 자신을 도피하게 한 행위가 형사사법 절차에 영향을 미치는 등 방어권을 남용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형법 제151조 제1항에 따라 범인도피교사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1심과 항소심은 향정 및 범인도피교사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해 징역 8년을 선고했다. A 씨가 B 씨에게 은신처를 은폐하도록 부탁하고 수사진행 과정을 확인하며 태국으로 도피하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청한 것은 통상적 도피행위와 성격이 다를 뿐 아니라 방어권을 남용한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A 씨와 B 씨는 10년 이상의 친분 관계 때문에 B 씨가 A 씨의 부탁에 응해 도와준 것으로 보이며 도피를 위한 인적·물적 시설을 미리 구비하거나 조직적 단체를 구성해 역할 분담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B 씨가 A 씨에게 은신처와 타인 명의의 휴대전화를 마련해 준 것은 형사사법에 중대한 장애를 초래한다고 보기 어려운 통상적인 도피의 한 유형으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A 씨와 B 씨 사이에 암묵적으로 ‘A 씨가 검거될 위험이 있다고 보이면 A 씨의 소재에 관해 허위로 진술함으로써 도피시켜 달라’는 취지의 의사가 있었고 그 결과 A 씨가 도피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의사나 도피의 결과를 형사피의자로서의 방어권 남용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출처:르엘 홍윤지 기자